대전 은행동 야간 힙플 모음집

은행동을 밤에 걷다 보면 도시의 표정이 낮과 완전히 달라진다. 학원 마감과 퇴근 러시가 빠져나간 뒤에도 이 동네는 좀처럼 조용해지지 않는다. 성심당 쪽에서 달콤한 빵 냄새가 한 번 훑고 지나가면, 중앙로 문화의 거리에는 디제잉 리허설 소리와 파티오에서 부딪히는 잔 소리가 겹친다. 적당히 오밀조밀하고, 골목마다 개성이 살아있다. 막연히 핫하다는 말 대신, 실제로 밤 시간을 보내며 검증한 장소들과 흐름을 풀어놓는다. 요일과 시간, 동선에 따라 만족도가 갈린다. 특히 은행동 특유의 밀도 높은 동선은 조금만 계획을 잡아도 두세 배 재미있어진다.

밤을 시작하기 좋은 시간과 첫 잔

대전에서 밤은 느리게 열린다. 금요일과 토요일은 저녁 7시부터 붐비기 시작하지만, 수요일과 목요일은 8시 이후에 톤이 올라간다. 첫 잔은 너무 시끄럽지 않은 곳이 좋다. 서로의 목소리가 들리면서도 분위기 전환이 가능한 곳, 앉아서 한 시간 정도 몸을 풀 수 있는 곳을 기준으로 골랐다.

중앙로역 5번 출구에서 도보 3분, 골목 모퉁이를 돌면 잔잔한 조도를 유지한 내추럴 와인 바가 하나 있다. 주말이면 자리잡기가 어렵지만, 평일에는 2인석이 빠르게 돈다. 글래스 와인을 9천원에서 1만 4천원 사이로 구성하고, 병 가격대는 4만 중반에서 9만까지 폭이 넓다. 초보자에게는 산미가 부드러운 가메이 또는 이탈리아 프리울리 오렌지 와인을 권한다. 은행동 와인 바의 장점은 간이 안주가 제법 묵직하다는 점이다. 양파를 통째로 구워 내는 오븐 요리나 오일에 적신 엔초비 토스트 같은 간단한 메뉴도 탄수화물과 염도를 잘 채운다. 와인이 익숙하지 않다면 하이볼이 무난하게 받쳐준다. 대전의 바텐더들은 위스키를 너무 과하게 쓰지 않아서, 라이트한 첫 잔으로 좋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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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반에서 8시 사이, 테이블 회전이 한 번 돌아가는 타이밍에 맞춰 들어가면 가장 여유롭다. 이상적인 체류 시간은 50분에서 1시간 20분. 두 잔 이상은 다음 동선을 깎아먹는다. 은행동의 밤은 세 번째 장소가 진짜 재미있다.

골목 깊숙한 식사, 한 끼를 건너뛰지 말아야 하는 이유

술만 마시는 밤은 금방 지친다. 은행동은 늦은 시간에도 간단히 배를 채울 곳이 많다. 일본식 이자카야가 몰려 있는 블록에서 치킨난반과 닭똥집 버터구이 같은 기름기 있는 요리를 한 접시 추가하면, 이후 템포가 길어진다. 굵은 소금의 염도와 지방이 알코올 흡수를 늦추고, 과음 속도를 낮춘다. 반대로 너무 무거운 찌개류나 밥 한 공기를 비워내면 졸음이 몰려온다. 가벼운 단백질, 소금, 탄수화물의 순서가 좋다.

늦은 시간까지 영업하는 분식집을 지나치지 못할 때도 있다. 10시가 넘어 주문하는 떡볶이는 후회로 남기 쉽다. 매운맛의 상향 곡선이 다음 잔의 풍미를 덮어버리기 때문. 매운맛을 빼고 싶지 않다면, 고추기름으로 향만 살린 만두나 탕수육 소스를 살짝 곁들이는 쪽이 낫다. 은행동의 분식은 달달한 소스 비율이 높은 편이라 와인이나 라거와 호흡이 맞지 않는다. 이 구간에서 라거 대신 필스너, 하이볼, 혹은 드라이한 진토닉이 좋은 우회로다.

바 호핑의 핵심, 사운드와 조도

같은 음료라도 공간에 따라 목넘김이 달라진다. 바의 사운드 레벨과 조도는 한 사람의 컨디션에 크게 영향을 준다. 은행동의 요즘 흐름은 너무 과하게 어둡거나 너무 밝지 않은, 얼굴 표정이 보이는 수준의 조도다. 디제잉이 있는 날엔 베이스가 바닥에서 울리는데, 대화가 목적이면 스피커 반대편 벽면, 혹은 기둥 뒤를 잡는 게 정답이다. 스피커 정면의 하이톤은 금방 피로감을 준다.

루프탑 바는 계절을 탄다. 5월과 9월, 10월 초가 가장 좋다. 여름엔 바람이 없으면 금방 축 처지고, 겨울엔 열선이 있어도 손끝이 먼저 포기한다. 대전은 미세먼지 수치가 왔다 갔다하는데, 시야가 흐린 날엔 굳이 올라갈 필요가 없다. 대신 가로수와 간판만 보이는 3층 바의 창가석이 더 낭만적이다. 비가 오는 날에는 노폭이 좁은 골목의 텐트 좌석이 분위기를 만든다. 천천히 떨어지는 빗소리와 스테인리스 테이블의 반사가 어색한 침묵을 지워준다.

은행동의 맥주 지도, 생맥 하나만으로 평가가 가능한가

은행동에는 생맥의 퀄리티로 입소문 난 곳이 몇 군데 있다. 라인 청결, 온도, 거품 밀도의 세 가지 지표로 보면 한 잔에 모든 게 드러난다. 거품을 너무 빽빽하게 올려 맥주량을 줄이는 곳은 드물다. 오히려 문제는 거품이 너무 금방 꺼지는 경우다. 라인에 남은 기름기나 잔의 세제가 원인일 때가 많다. 신선한 라거는 첫 모금의 탄산이 혀끝을 톡 치고, 목으로 넘길 때 텁텁함이 없어야 한다. 필스너의 살짝 쌉쌀한 여운이 남아 있으면 더 좋다.

크래프트 맥주를 고를 때는 라인업을 과신하지 말고, 회전률을 보자. 대전의 특성상 너무 마이너한 스타일은 빠르게 순환하지 않는다. 탭에 올라온 지 일주일 이상이 지나면 향이 죽는다. 바텐더에게 오늘 가장 잘 나가는 탭, 비어가는 속도가 빠른 탭을 물어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어색함 없애는 말문은 간단하다. 오늘 깨끗한 라인, 탄산이 살아 있는 탭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된다. 대개 두 가지를 제시한다. IPA는 홉향이 확실한 날과 죽는 날의 편차가 크다. 은행동 밤의 흐름에선 농익은 IPA 한 잔보다, 필스너에서 세션 IPA, 혹은 바이젠으로 넘어가는 경로가 안정적이다.

와인 바의 작은 테스트, 잔 관리와 물

잔의 립이 깎여 있거나 미세한 클라우드가 낀 잔을 피하는 요령은 간단하다. 첫 물을 마셔보면 된다. 물맛이 탁하거나 얼음 냄새가 나면 잔 세척이나 보관에서 아쉬움이 있다. 은행동의 와인 바는 대체로 관리가 깔끔하지만, 회전이 급격히 늘어나는 금요일 9시 이후엔 품이 줄어든다. 이런 날은 병 주문이 유리하다. 코르크 상태를 체크하고, 첫 잔을 따른 뒤 향을 맡아보면 산화 여부가 명확하다. 문제 있으면 바로 얘기하면 된다. 좋은 바는 손님 탓을 하지 않는다.

페어링에선 과한 욕심을 줄이자. 은행동에서 흔히 마주치는 플레이트 메뉴는 염도가 다소 높은 편이다. 올리브, 페타 치즈, 살라미가 기본으로 들어간다. 산미 있는 화이트와 만나면 좋지만, 지나치면 와인이 밍밍해진다. 레드라면 가벼운 바디의 루아르 가메이, 혹은 부르고뉴 꼬뜨 드 본의 엔트리급을 추천한다. 과실이 전면에 오고, 탄닌이 날카롭지 않다. 예산 범위는 잔으로 1만 2천에서 1만 8천, 병으로 6만에서 12만 정도면 실패 확률이 낮다.

은행동의 디제잉 밤, 장비보다 큐시트

클럽이라 부르기엔 캐주얼하고, 라운지라 하기엔 볼륨이 올라가는 공간이 몇 군데 있다.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셋이 붙는 경우가 많고, 오피 로컬 디제이들이 플레이한다. 밤 10시 전에 들어가면 바 좌석이 남아 있고, 11시 반이면 스탠딩이 섞인다. 이곳들의 공통점은 장비보다 큐시트의 흐름을 중시한다는 점. 하우스와 디스코, 뉴재즈가 섞여 나오다가, 피크타임엔 보컬 샘플을 얹은 펑키한 하우스로 치고 올라간다. 이때 잔 손이 바쁘고, 대화는 자연히 줄어든다.

피크를 즐기려면 위치 선정이 중요하다. 바 앞은 주문이 빠르지만, 드나드는 사람과 잔이 계속 스친다. 벽면 쪽 2열이 좋은 타협점이다. 비트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로 충분하다. 은행동에서는 과한 리액션이 어색하게 보일 수 있다. 동네 특유의 선이 있다. 끓는점은 분명하지만 광적인 춤판으로 번지진 않는다. 그 대신 시선이 맞으면 건배가 오간다. 알 수 없는 동지감이 있다.

숨은 포인트, 까페와 디저트의 밤 운영

밤의 끝은 달달함으로 닫아도 좋다. 은행동에는 11시까지 운영하는 베이커리, 자정 직전까지 불을 켜두는 디저트 카페가 드문 편이지만 존재한다. 커피보다 티를 권한다. 카페인이 부담되는 시간이니, 허브나 루이보스, 혹은 홍차 라떼가 좋다. 라떼는 당을 올리지만 속을 무겁게 하지 않는다. 조각 케이크 하나를 반씩 나눠도 충분하다. 디저트는 과일 베이스를 고르는 게 다음날 후회가 적다. 크림 치즈나 땅콩 버터처럼 유지방이 높은 메뉴는 자정 넘어 소화가 더디다.

밤 11시 반 이후 은행동의 카페 좌석은 신기하게도 높은 집중력을 제공한다. 주말에도 그랬다. 각자의 핸드폰 화면빛과 노트가 펼쳐져 있고, 낮과 다른 조용한 열기가 느껴진다. 소음을 피하고 싶다면 유리창 앞 2인석 대신 안쪽 벽면을 권한다. 골목의 바이크 배기음이 간헐적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대화의 결을 바꾸는 스피크이지들

현판이 눈에 띄지 않는 2층 바나, 암호처럼 보이는 작은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는 스피크이지는 은행동에 두세 군데 있다. 예약을 받아 조용함을 유지하는 곳도 있다. 이곳에서는 과하지 않은 클래식 칵테일로 시작하는 게 순서다. 네그로니, 마티니, 사워류가 기본이지만, 이 동네 바텐더들은 한국적 재료를 섞는 시도를 제법 한다. 매실 리큐르로 밸런스를 잡거나, 향긋한 솔잎 시럽을 드롭처럼 얹는 식이다. 실패도 있지만 성공하면 기억에 남는다.

이런 바에서 지켜야 할 매너는 단순하다. 메뉴에 없는 주문을 무턱대고 강요하지 않는다. 디저트 스푼을 요구하듯 섬세한 커스터마이즈도 타이밍을 봐야 한다. 바 스툴에 앉았다면 잔을 바 위 가장자리로 너무 밀어두지 말자. 은행동의 작은 바는 동선이 좁다. 바텐더의 팔꿈치와 손님의 잔, 그리고 얼음 버킷의 동선이 겹치면 사고가 난다.

요일별 흐름, 현지 리듬을 타야 한다

수요일은 워밍업이다. 신메뉴가 올라오고, 바텐더도 여유가 있어 추천을 꼼꼼히 해준다. 첫 방문이라면 수요일을 노리자. 목요일은 로컬 직장인과 대학생이 함께 섞이는 날이다. 대화 주제로 프로젝트 마감과 시험이 동시에 등장한다. 금요일은 예약이 반, 웨이팅이 반이다. 7시 반 이전에 첫 장소에 앉아야 한다. 토요일은 변수가 많다. 낮부터 이어진 모임이 저녁까지 번져서, 곳곳에서 텐션이 간헐적으로 치솟는다. 만약 조용함을 원한다면 토요일 6시 반에 시작해 10시 전 이동을 끝내는 게 최선이다. 일요일 밤은 은근히 괜찮다. 닫는 곳이 늘어나지만, 열어둔 곳의 집중력이 올라간다. 바텐더와 오랫동안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유일한 날이기도 하다.

최소 동선 플랜 두 가지

은행동의 매력은 걸음 수 대비 만족도가 높다는 점이다. 같은 블록 안에서 분위기가 다른 곳을 연달아 경험할 수 있다. 이동 중에 지치지 않기 위해, 계단이 적은 동선을 고르는 것도 팁이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3, 4층 업장은 여름에 곤욕이다. 반대로 겨울에는 층고 높은 1층이 외풍을 타서 춥다. 계절별 최적 동선을 따로 잡으면 체력 배분이 쉬워진다.

    가벼운 밤 플랜, 2시간 반짜리: 첫 잔은 조용한 와인 바에서 글래스 한 잔과 간소한 플레이트. 45분 내에 자리에서 일어나 맞은편 라거 전문집으로 이동, 생필스너와 가벼운 프라이드를 공유. 마지막으로 라운지 바에서 하이볼 한 잔, 대화의 볼륨을 낮추고 11시 전에 귀가. 주말 피크 플랜, 4시간짜리: 해피아워 타임에 칵테일 바 입장, 시그니처와 클래식을 하나씩. 골목 이자카야로 이동해 단백질 위주의 두 접시와 사케 소잔. 10시 반 즈음 디제잉 라운지로 입장, 한 잔만 더. 텐션이 과하다면 인근 스피크이지에서 잔잔하게 마무리.

두 플랜 모두 택시 없이 걸어서 가능하다. 다만 우천 시에는 우산에 물기를 털어둘 수 있는 가게를 고르는 게 편하다. 입구에 미끄럼 방지가 잘 안 되어 있는 업장이 종종 있다. 비오는 날 미끄러지는 사고는 대체로 젖은 우산과 타일의 조합에서 나온다.

은행동의 밤을 망치지 않는 세 가지 기술

첫째, 주문 타이밍을 잘라라. 자리가 꽉 찬 순간에 한 번에 두 잔을 주문하면, 다음 잔이 도착하는데 15분 넘게 걸리기도 한다. 한 잔을 절반 남겼을 때 다음 잔을 부탁하면 공백이 준다.

둘째, 현금은 조금 챙겨라. 아직도 일부 스몰 바는 카드 결제가 원활하지 않거나, 최소 결제 금액을 둔다. 1만 원 정도 현금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부드럽게 넘긴다.

셋째, 소리의 중심을 피하라. 무대 앞이나 스피커 앞을 고집하지 말고, 벽면과 기둥이 있는 곳을 찾는다. 대화의 피로가 절반으로 줄고, 귀가 덜 먹먹하다.

새벽 대체재, 해장과 귀가의 사이

은행동 밤이 늘 술로만 끝날 필요는 없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24시간 가까이 운영하는 국밥집과 북엇국집이 있다. 새벽 1시 이후엔 텅 빈 좌석과 맑은 국물 한 그릇이 머리를 맑게 해준다. 술이 많이 올라왔다면 매운 국물은 되려 속을 뒤튼다. 맑은 선지, 혹은 순한 북어가 더 낫다. 밥은 절반만, 대신 미역과 무를 많이 먹자. 다음날 컨디션 차이가 크다.

택시 수요는 금요일과 토요일 자정 직후가 정점이다. 12시 10분부터 12시 40분까지 콜이 폭증한다. 이 시간대를 고집하지 말고, 11시 50분에 서둘러 부르거나 1시 이후로 미루면 잡기 쉽다. 심야 할증이 붙어도 10분을 덜 서성이는 게 낫다. 대전은 도로가 넓어 보이지만, 은행동 주변 일방통행이 얽혀 있어 회차가 번거롭다. 배차가 되면 위치를 확실히 보내고, 골목 안으로 너무 깊게 들어가지 말자.

혼술과 다인 모임, 서로 다른 전략

혼자라면 바 스툴이 최고의 자리다. 동선의 중심에서 바텐더와 눈이 닿고, 잔이 비었을 때 바로 보충되며, 이야기의 출구가 열려 있다. 다만 노트북을 펼치거나 통화가 잦으면 주변 시선이 모인다. 혼술은 짧고 굵게, 90분 이내로 끊는 게 에티켓에 가깝다. 팁 문화는 엄격하지 않지만, 유난히 신경을 써준 날에는 거스름돈을 두고 나오는 정도면 충분히 의미가 통한다.

넷 이상의 모임은 테이블을 미리 확보해야 한다. 은행동에서 4인 테이블은 빠르게 매진된다. 예약 가능 시간을 물어보면 대부분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사이로 제한을 둔다. 이 시간을 채우겠다는 집착은 버리자. 두 번째 장소로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모임이 전체 만족도가 높다. 계산은 한 번에, 메뉴는 공유 가능한 방향으로 구성하면 회전이 빠르다. 4인 이상에서 칵테일을 각자 다른 것으로 주문하면 바가 뒤엉킨다. 첫 라운드는 같은 계열로 맞춰서 출발하는 편이 좋다.

계절의 차이, 겨울의 열선과 여름의 얼음

겨울의 은행동은 열선이 있는 테라스, 단열이 좋은 창을 가진 바가 가치를 증명한다. 문이 열릴 때마다 냉기가 쏟아져 들어오는데, 좌석을 잡을 때 출입문과의 거리를 고려하자. 코트 걸이가 부족한 곳도 많다. 의자 등에 걸쳐두면 음식 냄새가 밴다. 접이식 휴대용 고리를 가방에 하나 넣어두면 의외로 쓸모가 크다. 여름에는 얼음의 질이 음료의 질을 좌우한다. 흐린 얼음과 냄새나는 얼음은 바로 티가 난다. 은행동의 좋은 바는 큐브가 천천히 녹는다. 하이볼이 끝까지 묽어지지 않는다. 플라스틱 빨대 대신 스테인리스 혹은 종이를 쓰는 곳도 늘었다. 입술에 닿는 감각이 달라지니, 싫다면 주문 시 미리 말하자.

로컬의 질서, 서로의 밤을 지키는 방법

은행동은 로컬의 손과 외지의 발이 섞이는 동네다. 서로의 밤을 지키는 최소한의 질서가 있다. 가게 앞 골목에서 크게 떠들거나, 줄을 지나치게 늘어뜨리면 위층과 옆 가게에 피해가 간다. 흡연은 표기된 자리에서 조용히. 유리잔을 들고 밖으로 나가는 행위는 거의 모든 바에서 금지다. 간간이 보이는 스트리트 뮤지션 앞에서 촬영을 요청하면 대체로 응하지만, 연주를 끊게 하지 말자. 팁 박스가 있으면 천 원, 이천 원 정도라도 넣는 게 예의다.

사진 촬영은 조심스럽게. 은행동의 바는 조도가 낮아 플래시를 터뜨리면 눈총을 받는다. 사람 얼굴이 들어가면 미리 동의를 구하자. 사소해 보이지만, 이 작은 배려들이 다음 방문의 편안함을 담보한다.

예산과 가치, 얼마가 적당한가

둘이서 은행동 밤을 가볍게 보내면 6만에서 9만 사이가 적정선이다. 와인 두 잔과 가벼운 안주, 이동해서 생맥 두 잔, 마무리 하이볼 한 잔이면 이 안에 들어온다. 디제잉 라운지까지 포함하거나, 스피크이지에서 시그니처 칵테일을 곁들이면 10만에서 14만까지 올라간다. 무리할 필요는 없다. 배분이 중요하다. 첫 장소에서 과도한 지출을 하면 나머지가 밋밋해진다. 차라리 세 번째 장소에 포인트를 두자. 음악, 분위기, 사운드, 조도가 동시에 맞아 떨어질 때 값어치가 생긴다.

팁 하나. 테이스팅을 요청할 때는 정확히 한 가지 잔만. 여러 잔을 연달아 요청하면 바의 흐름이 깨진다. 대신 취향을 명확히 설명하자. 드라이, 허브, 시트러스, 묵직함의 수준. 은행동의 바텐더와 서버들은 의사소통이 잘 될 때 가장 좋은 추천을 내놓는다.

은행동을 떠나며, 다음 밤을 위한 메모

한 번의 밤으로 은행동을 다 알 수는 없다. 같은 곳도 요일과 라인업, 날씨에 따라 표정이 변한다. 첫 방문에서 좋았던 곳을 바로 단골로 만들기보다는, 두세 번은 다른 시간에 다시 가보자. 금요일의 소란과 수요일의 정적은 전혀 다른 기억을 남긴다. 몇 달 주기로 메뉴가 바뀌는 곳도 있고, 시즌 재료가 들어오는 시점에 퀄리티가 크게 뛰는 곳도 있다. 벚꽃이 필 때, 비가 추적일 때, 첫 추위가 몰려올 때 같은 계절의 변곡점에 방문하면 이유를 알게 된다.

돌아오는 길, 중앙로의 네온이 물결처럼 흔들린다. 은행나무 잎은 계절에 따라 빛 색을 바꾸고, 오래된 간판과 새로 온 간판이 균형을 잡는다. 이 동네 밤의 진짜 매력은 성대한 이벤트보다 작은 합의에 있다. 서로가 방해되지 않는 거리, 취향을 존중하는 시선, 그리고 적당한 배려. 그렇게 모양을 갖춘 밤은 다음에 다시 보고 싶어진다. 은행동은 오늘 밤도 살아 있다. 걷고, 멈추고, 한 잔을 비우고, 또 걸으면 된다.